헤라클레스와 켄타우로스(상체는 인간이고 하체와 다리는 말의 형상을 한 그리스 신화 속 생명체)가 피토스 항아리(암포라)를 두고 폴로이 고원(일리아 지역)에서 벌였던 싸움은 그 옛날부터 그 지역에서 널리 퍼져 있던 와인 문화를 잘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 올림픽 경기의 탄생지인 고대 올림피아의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레노스(포도를 밟던 압착소)” 같은 고고학적 증거로도 뒷받침된다.
제우스의 아들이자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 여러 지역에서 칭송 받았다. 고대 아이게이라(아하이아 지역)에는 아이게이라가 그 시대에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던 지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와인 생산과 관련된 신화가 있다. 바로 “하루 만에 자라는 포도나무” 이야기다. 디오니소스 축제 기간에 이 포도나무는 아주 기이하게 자라났다. 해 뜰 무렵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고, 같은 날 저녁에 포도가 익어 먹거나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신화에 따르면 이렇게 만들어진 훌륭한 와인은 와인의 신을 기리는 이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마셨으며, 이것은 신의 힘을 보여주는 기적 중 하나였다고 한다.
물론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든 것은 사람이었지만 아하이아와 일리아의 아름다운 포도원들은 수 세기 동안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한 채로 산등성이에 원형극장처럼 움푹 팬 지형 속에서 이오니아해와 코린토스 만의 커다란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여름이면 햇빛을 듬뿍 받고 포도를 키워냈다.
로마 시대에 와인의 흔적은 포도 압착 시설(레노이)을 갖추었던 몇몇 시골집 유적이라든가 포도 수확과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와인 파티 같은 장면을 표현한 모자이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차지했던 1715년에는 와인 생산의 명맥이 잠시 끊어졌었다. 투르크족은 그리스인들과 포도나무나 와인 사이의 깊은 관계를 금세 알아채고 와인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과중한 세금을 매김으로써 그것을 십분 이용했다. 많은 가문이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령군의 탐욕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포도 재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그 “정신”만은 수도원에서 살아남아 아하이아의 칼라브리타 외곽 메가 스필레오 같은 곳에서 지하 창고에 숨어 몰래 와인 양조의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1830년 이후 아하이아와 일리아 모두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는데 이는 코린트 블랙 커런트(그리스어로 스타피다) 시장이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한 까닭이 크다. 필록세라가 널리 퍼져 프랑스 포도원들이 큰 타격을 입음에 따라 코린트 건포도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코린트 건포도는 주요 그리스 수출 품목이 되었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전체 수출 중 무려 70%에 달하게 되어 그리스의 대표 제품으로 이름을 높였다. 이는 두 지역에 상당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20세기 초에 필록세라를 물리치고 그에 따라 그리스에 건포도 위기가 발생하면서 그리스 농업 인구의 상당수가 새 삶을 찾아 지방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1870년대는 아하이아와 일리아에 최초의 와인 회사와 증류소가 세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달콤한 레드 주정강화 와인과 스위트 머스캇 화이트 와인이 탄생했고 곧 인기를 얻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리스와 전 세계에서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아하이아의 포도밭은 현대 그리스 와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파트라스 시내에서 차로 단 45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는 고도가 높고 가파른 애기알리아 언덕에서 여전히 무성한 관목 덩굴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아하이아는 가격 대비 가치가 아주 훌륭한 좋은 품질의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벌크 와인 생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웃한 일리아에서는 높은 파도를 타는 서퍼들과 수 킬로미터씩 이어진 모래 해변을 볼 수 있지만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도원들이 자리해 있기도 하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부의 아하이아와 일리아는 대단히 아름답지만 그리스 국경을 넘어서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새로이 부상하는 여러 생산자들이 두 지역에서 와인 르네상스를 이끌며 현지 품종만의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는 와인을 만들면서 두 지역의 오랜 양조 역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고맙게도 세상은 이 독특한 “보물들”을 점점 알아보는 중이다.